어린시절의 꿈
오늘 우연히 유튜브에서 97년도 광고들을 보았다.
97년도이면 중학교 1학년때이다.
20년전의 추억의 광고들...
모두다는 아니지만 절반이상은 기억나는 광고들이었다.
광고를 보니 옛날생각이 들었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절... 나의 꿈은 너무나 흔하디 흔한 의사였다. 의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초딩의 나는 꿈이 없는 소년이었다.
초딩3학년이 되어서 난 꿈이 생겼다. 발명가. 만드는게 너무 재미있었고 그에 관련된 책들도 적지않게 많이 보았다. 비록 만화책이 대부분이었지만...
나의 책상에는 여러가지 발명품들이 항상 쓰레기로 널부러져 있었고, 엄마는 항상 그것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 쓰레기들은 나에게 보물이었고,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필수요소였다.
1주일에 2개 이상의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주위에 있는 모든것들이 재료로 보였다. 동네전부를 돌아다니면서 아이스크림 막대기바를 주워서 재료로 사용했던 기억까지 난다.
광적으로 만들기는 좋아한 것은 외로움에 대한 외적인 표현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상처로 폭발하고야 말았다.
시원하다 못해 차갑기까지 한 93년도 겨울방학시즌 어느 일요일 한가한 오전시간...
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쓰레기로 발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패트병을 셔터칼로 도륙질을 하던도중 나의 엄지손가락에는 평생을 함께 안고 갈 영광의 상처가 탄생하고야 말았다.
응급실 ㄱㄱ싱... 내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무언가에 빠져서 살았던 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나의 벗이 되어주었던 동네쓰레기들과 나의 훌륭한 선생님이었던 EBS TV 프로그램 "만들어볼까요"(진행자가 길은정씨였음. 그때 참 이뻣던 것으로 기억함.)
그렇게 빠져살았던 나의 발명 스토리는 초딩4학년이 되면서 사라져버렸다.
4학년이 되면서 식물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빠져들기 시작한건 초딩3학년때부터지만 우선순위가 발명에 뒤졌었음...
흙을 구할수가 없어서 놀이터의 모래를 가져와서 씨앗을 심어도 보고, 약간의 흙이라도 갖고 싶어서 벽돌사이 흙이라도 담을려고 했었다.
명절에 시골에 가면 포대자루에 흙을 담아올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난 정말 호기심많고 하고싶은것에 대한 열정만으로도 뭘해도 성공할 수 있었던 시기였던것 같다.
대한민국의 주입신 교육, 주문식 교육때문에 대한민국의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 주커버그 기타등등... 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재능과 열정이 파묻혀져 버렸다. 헤헤~
나이를 들어가면서 꿈과 열정은 사그러지고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가식적인 꿈만이 현실이 되는 듯 했다.
중학교 때는 특별히 빠긴게 없는데 그나마 빠졌다고 한다면 게임이었다.
파랜드 택틱스, 대항해시대, 창세기전, 디아블로, 스타크레프트, 프린세스 메이커, 삼국지, 원조비사, 포가튼 사가, 의천도룡기 외전... 엔딩을 본 게임 생각나는건 이정도인데...
게임은 미래의 추억이 된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 즐겼던 게임들의 BGM을 듣고 있으면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내 인생의 학창시절 가장 재미있었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잡담이 길었다....
내일 이어서 써야징...
새벽타임은 감성을 너무 자극해서 문제다 헤헤